나의 이야기

싸움닭에 대한 회상

진실의 강 2020. 11. 29. 15:21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이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장닭이 한 마리 있었다. 이 닭이 얼마나 사나운지 온 동네 수탉들은 볏에 핏방울이 마를 날 없었고 개와 송아지마저 쫓겨 다녔다. 게다가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낙네들에게까지 서슴없이 달려들었다. 수탉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개와 송아지는 사립문을 밀치고 달아났다. 날카로운 부리에 정강이와 종아리를 쪼인 아이들은 눈물을 찔끔거렸으며 아낙네들은 치마를 감싸 쥐고 종종걸음을 쳤다.

 

제왕의 위엄을 지녔다. 여물통 위에서 콩을 쪼면 소가 고개를 돌렸고 개와 강아지는 밥통을 팽개치고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다. 겁먹은 아이들은 울타리 밖 멀찍이서 작은 소리로 불렀고 아낙네들은 떼를 지어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모두를 쫓아내고 마당 한복판에서 사방을 돌아보는 장닭의 늠름한 자태는 정녕 자랑스러웠다. 그 장닭 옆에서 득의의 미소를 짓는 내 얼굴 또한 아이들에겐 걷잡을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장닭에게도 예외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와 나를 비롯한 동네 사내들에게는 일절 달려들지 않았다. 용하게 시류를 알고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예의범절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 사방에서 장닭에 대한 원성이 높아 갔다. 징징거리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쫓겨 달아나던 아낙네들이 치마를 밟고 넘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말복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냇가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사립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구수한 냄새가 온통 진동을 했다. 군침을 가득 담고 한달음에 뛰어가니 어머니가 아궁이에 청솔가지를 밀어 넣고 있었다.

 

엄마! 이거 뭔데?

닭 잡았어. 오늘이 복날이잖니.

어떤 닭!?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머릿속이 텅 빈 듯 윙윙 소리가 났다. 나는 닭을 먹지 않았다. 밤새도록 이불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오열했고 사흘을 몸져누웠다. 머리맡에서 어머니가 언성을 높였다. 어미, 아비 죽어도 그렇게 슬프지 않겠다!

 

이튿날이었다. 장닭에게 눌려 구석에서 웅크리고 지내던 검은 수탉이 볏을 빳빳이 세운 채 암탉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온 동네 강아지들이 모여들어 깽깽거렸고 송아지가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그렇게 장닭이 죽고 나자 나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어 번,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던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신은 싸움닭 같아. 자리에서 돌아누우며 건네는 아내의 말에 쓴웃음을 짓다 떠올린 추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장닭을 좋아했을까. 안 돼. 팔다리를 버둥대다 잠이 깨었다. 온통 몸이 젖어 있다. 아버지가 장닭의 목을 비트는 환영이 보이면서 가위를 눌린 모양이었다.

 

언제든 그래 왔지만 지금 세상이 한창 시끄럽다. 안으로는 총선과 대통령 탄핵으로 밖으로는 이라크 추가 파병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 들끓고 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저마다 목청을 높여 충절을 뽐내며 당위성을 끌어다 붙인다. 자못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외쳐 댄다. 아전인수로 치달아 죽기 살기로 악을 써대니 그 희고 검음도 가늠하기 정히 어렵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 스스로 바라보는 거울 속 얼굴은 과연 어떤 표정일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도 꼭 그랬다. 왜에 다녀온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두고 야망이 있는 인물이다. 반드시 쳐들어 올 것이다. 대비를 해야 한다.라고 했고, 김성일은 쥐새끼 같은 관상이다. 전쟁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못된다.라고 했다. 그렇게 찧고 까불고 흔들고 헐뜯으며 허송세월만 보냈다. 이윽고 왜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유린되고 온 국민이 처참하게 죽어 갔으며, 헤아릴 수도 없는 여인들이 왜의 노리개가 되었다.

 

언제나 정의의 깃발만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초 허위 사실 보고로 파직되었던 김성일은 이내 복직되어 승승장구 벼슬이 올랐고, 작금 그의 후손들은 김성일을 위한 변명을 만들었다. 민심의 동요가 외침보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치를 위해서였다.라는 요지다. 아마도 그의 후손들이 시쳇말로 출세를 좀 한 모양이다. 이순신 장군을 모함한 원균의 후손들도 매국노인 친일파의 후속들도 그랬다. 그들도 살아남아 원균을 위한 변명과 친일파를 위한 변명을 만들었다. 그들도 제법 자랑스러운 출세자의 반열에 끼었다.

 

시류와 대세를 알고 책략을 꿰뚫던 장닭도 운명을 비켜서지는 못했다. 천하를 들여다보던 총명한 한비는 간특한 변설가인 이사에게 독살되었고, 두만강을 넘나들던 남이는 얄팍한 술책가인 유자광과 예종에게 주살되었다. 백마산성에서 휘파람 불던 임경업은 간사한 모리배인 김자점과 인조에게 장살되었고, 흑룡강에서 옷깃 휘날리던 김구는 철부지 안두희와 십자가 그늘에서 뛰어놀던 이승만에게 암살당했다.

 

세상사는 정답이 없고 시와 운이 따라야 한다. 용이 개천에 떨어지면 미꾸라지에게 희롱당하고 범이 구덩이에 빠지면 강아지의 놀림감이 되는 법이다. 바람에 날린 민들레 홀씨의 알갱이는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 갔고 쭉정이는 옥토에 뿌리를 박고 싹을 틔웠다. 송화강에서 말 달리던 의혈지사의 후예는 동토에서 언 발을 동동거리는데, 일장기를 목에 두른 변절자의 후속은 강남에서 작부를 끼고 애국가를 부르며 기고만장이다.

 

어떻든 능력의 범주와 한계를 벗어난 일들이다. 스스로 왈가왈부할 사안도 또 어제오늘만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걱정도 지나치면 기우가 된다.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태양이 떠오를 것이며, 똑같은 바람은 불어오고 똑같은 구름이 떠돌아다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침묵은 정도가 아니다. ()들의 역사 왜곡 등 몰염치에 대하여 누구는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놓겠다.라고 쇳소리를 냈고, 그들의 선제공격 운운에 누구는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득과 실은 차치하더라도 묵묵부답인 누구누구보다는 그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아마도 아내의 말처럼, 어릴 적 장닭의 기질을 닮기는 닮은 모양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