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제 가을인 게다

진실의 강 2022. 7. 7. 17:37

뻐꾹새가 울 무렵 처음 통화를 했다. 중학교 동창회에 다녀왔다며 아주 낯선 목소리가 서슴없이 이름을 불렀다. 그는 중학교 시절 우리 집에서 하룻밤 같이 보낸 추억을 꺼내며 윗목에 놓아둔 커다란 고구마 가마니를 이야기했다 무척 반가워했으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골똘히 적려(積慮)해 보아도 얼굴은 물론 이름마저 생소하기만 했다.

 

초여름에 접어든 어느 날 친구의 식당을 찾아갔다. 구미에서 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순대 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의 자랑 아닌 자랑과 얼굴 한번 보자는 채근의 정에서였다. 얼굴을 마주한 친구는 짐작보다 나이가 들어보였고 그 얼굴에서 옛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50여 년 가까이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역시 낯설어했으나 우리는 중학교 동창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금방 너나들이를 하며 어울렸다.

 

막걸리가 몇 순배 돌자 화제는 종횡으로 거침없어졌다. 친구는 입학시험 당시 내가 성적이 좋았다는 것을 회상하고 그에 비해 현재 행로가 짐작보다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하며 그때 자신이 4등이었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했다. 그는 내일 일을 절대로 미리 당겨서 하지 않는다. 오늘 일도 미룰 수 있으면 내일로 미룬다.”라는 좀 독특한 자유 의지의 소유자였다. 친구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는 40대 초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3년 후 스님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달포쯤 지났을까. 불현듯 친구가 찾아왔다. 이따금 팔공산으로 국수를 먹으로 온다던 친구가 신숭겸 장군 유적지근처가 집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음이다. 친구보다는 그의 아내와 대화가 이어졌다. ‘다시 개울을 건너 언덕에 올라자전 수필집이다 거의 다 읽었다는 친구 아내가 그보다는 강단 있고 현실적으로 공감대가 더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는 우리 집을 자신이 상상했던 그대로라며, 검소하지만 깊이 정감이 가는 분위기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한가위가 지나자 급격히 더위가 사그라졌다. 친구에게 몇 번의 전화와 재촉을 받은 후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된다. 나름 바쁜 아내를 두고 택한 무궁화 열차는 족히 40여 년 만에 타 보는 것이었다. 의외로 좌석은 KTX보다 편안했고 동대구에서 구미까지 채 4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약목 근처를 지날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혼자 간다는 말을 하자 그때부터 그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웠음이 분명했다.

 

가게 앞을 서성이던 친구 내외가 반갑게 맞았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던 그가 대뜸 손을 잡아끈다. 산그늘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잔다. 무심결 위아래를 살펴보는 나에게 그의 아내가 묻는다. “운동화 드릴까요?” “아니, 뭐 괜찮습니다.” 사양하며 살펴보니 넥타이에 구두까지 갖춘 완전한 정장에다 어깨에는 작은 가죽 가방까지 둘러멘, 산길을 걸을만한 차림새는 분명 아니었다. “산도 높지 않은데 그냥 가자.” 친구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하며 앞장을 섰다.

 

친구가 마트에서 먹거리를 챙겼다. 김밥 세 줄, 물 한 병, 막걸리 세 병의 무게에 비닐봉지가 축 늘어졌다. 비닐봉지를 이쪽저쪽 어깨를 바꿔가며 성큼성큼 오르는 친구의 말과 달리 산길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5분이 지나고 다시 10여 분이 흘러갔다. 등산복을 갖춰 입지 않아서일까. 마른 흙과 잔돌이 뒤섞여 풀풀 먼지까지 일어나는 산길에 호젓함의 풍치보다는 점차 짜증이 솟기 시작했다. 넥타이는 벌써 풀어 제쳤고 흐르는 땀으로 목과 셔츠 사이를 손수건으로 감싼 지도 이미 오래다.

 

20여 분은 족히 넘어섰으리라. 평소 산책마저도 간소복과 운동화가 아니면 마다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마치 한낮 여우에게 홀린 듯 이만저만한 아이러니가 아니었다. 결국 정상까지 올라 다시 20m쯤 능선의 아래쪽, 친구가 원하던 정자에 도착하기까지 부질없는 자책만 이어졌다. 셔츠까지 벗어 정자 난간에 걸어놓고 막걸리 한 컵을 쭉 들이키자 비로소 구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술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몇 잔 거푸 들이키자 불편한 속내가 봄눈 녹듯 사라졌다. 친구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내가 막걸리 두 병을 비울 동안 그가 마신 것은 한 컵 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치과 치료를 이유로 들었으나 원래 술을 즐겨하지 않는 체질인데다 왠지 마시고 싶은 마음마저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나보다 더 흥겨워했고 대화에 적극성을 띠었다.

 

친구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창용의 당신이 최고야전국 제일 순대가 최고야로 개사하여 감정과 제스처를 넣어 가며 실감 나게 불렀던 그였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너무 기가 죽어 동요 바다,,하고 말았다고 한다. 노래 한 번 들려달라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친구가 일어섰다. 그는 손장단 발장단을 곁들인 품바 각설이 타령을 시작으로 윤항기의 장미빛 스카프T셔츠를 손으로 쥐어뜯어 가며 구성지게 불렀고, 상갓집 곡소리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리얼한 표정과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풀어놓았다.

 

땅거미를 따라 선뜩한 느낌이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불식간 두어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하산길에도 그는 특유의 낮고 느린 말투로 담화를 이어갔다. 지난 시의원 선거에서 분투한 자신의 무용담이다. 비록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무연고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로 선전한, 매일 아침 머리띠를 두르고 공단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구간 블록을 마라톤으로 세 바퀴씩 돌며 유세를 했다는 센세이셔널한 이야기였다.

 

열차 안이다. 밤 열차가 늘 그러하듯 권태감이 먼저 전신으로 잦아든다. 맹랑하고 고단한 하루였다. 친구 아내가 챙겨준 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순대꾸러미를 내려놓고, 등받이 깊숙이 몸을 가라앉히며 친구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노래자랑마다 인기상을 독차지했다는 그의 형색과 모션은 다채롭고 완숙했다. 문득 오늘 내가 짜 맞춰진 관객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스쳐갔다. 그가 무단히 3년 동안 스님 생활을 했다는 측면을 떠올려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상상만도 아닌 것 같았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그제 대관령에서 첫 얼음 소식을 전해 주더니 오늘은 설악산에서 절정에 이른 단풍에 내려앉는 첫눈 풍경을 보내왔다. 머잖아 팔공산에도 울긋불긋 천연색으로 그처럼 한껏 물들리라. 짙어 가는 가을 풍경에 문득 친구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날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 대한 진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또래의 관중이, 막역한 지기가 필요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심정이 자꾸만 가슴을 적신다. 그래, 애잔하게 그리움이, 처염하게 고독이 짙어 가는 게다. 그도 나도 깊어 가는 이 가을처럼, 이제 가을인 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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